입동(立冬)
순도 100%의 음기 세상
사실 하늘의 겨울은 추분(秋分) 때부터 시작되었다.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추분을 기점으로 슬슬 밤의 길이가 길어졌다.
한 달 반이 지나자 땅에도 곧 겨울이 시작된다.
이것이 겨울 기운이 세워지는 절기인 입동인 것이다.
입동은 이름만큼 춥지 않음에도 기운 상으로 보면 24절기 중 음기가 가장 세다.
상강 동안 양기는 숨고,
입동이 되자 순도 100%의 순음(純陰)의 기운이 세상을 호령한다.
순음의 기운은 세상 만물을 드러나지 않게 하여 잠재운다.
이때부터 동물들도 굴을 파고 들어가 동면에 들고,
나무들도 남은 잎사귀를 떨구고 낮은 숨을 쉬며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한다.
입동 기간 동안은 물이 얼고 땅이 얼어붙는다.
무대엔 정적이 흐르고 사람도 할 일이 없어진다.
심심해진 사람 역시 휴면 모드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양은 문이 열린 모습을 불러오고
생식과 생산 그리고 발산하는 힘을 환기시킨다.
반면 겨울이면 마을의 출입문은 닫힌다.
겨울은 닫힌 문을 상징으로 하는 음의 계절이다.
양은 차가운 계절 내내 음에게 사방이 포위된 채 지하 은거지에 거처해야만 했다.
음양의 개념은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를 자주 헷갈리게 한다.
음이 100%라면 양은 0%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음과 양은 늘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즉 음이 100%라면 양도 100%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음기 혼자 세상을 뛰어다니는 것 같지만 그것의 실체는 양기다.
하늘은 음과 양으로 따져보면 양의 기운이다.
결국 양기는 비의 모습으로 하강하고 땅에서는 음기로서 활동한다.
이렇게 보면 동양에서 늘 말하는 체용(體用)관계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즉 입동이 겉으로 보기엔 음기 일색이지만
본체 혹은 바탕[體]이 되는 것은 양이고
그것이 음의 다양한 스펙트럼[用]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입동은 기온은 뚝 떨어지고 찬바람 불어,
각자 덮고 싸고 어딘가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반면 그 안에서는 양기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입동이기도 한 것이다.
마치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밖이 찬만큼 안은 더 뜨거워져야 하듯이 말이다.
겉으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입동의 순음(純陰) 안에
용광로처럼 뜨거운 양이 있음을 놓치지 말자.
입동은 해(亥)를 품은 달(月)의 시작이다.
각 계절의 시작 즉 입(立)절기에는,
다가오는 계절과 다음 계절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
그런 고로 입동의 해(亥) 안에는 겨울[壬水]과 봄[甲木]이
보이지 않는 무토(戊土)의 손을 잡고 함께 들어 있다.
즉 겨울로 가는 발걸음은 이미 다음 해 봄을 염두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입춘까지 봄기운은 등장하지 않는다.
즉 봄을 품되 봄이 없는 듯 기나긴 휴면상태로 돌입하는 길목에 입동이 있다.
이를테면 씨앗처럼. 단단한 껍질로 품고 있는 것은 다음 해 봄에 펼쳐질 꿈이다.
작은 공간에 싱싱하게 뻗은 줄기와 화려한 꽃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겉보기엔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씨앗 안에 엄청난 양기가 똘똘 뭉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때는 사생결단을 내어 양기를 길이 보존해야 한다.
‘은근하고도 은밀한 뜨거움’.
요게 겨울을 여는 우리의 행동강령이다.
좀 다루기 어려운 뜨거움 같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마음을 나누는 상대를 넓히는 것이다.
그래서 입동엔 절대로 혼자 있지 말 것!
겨울맞이 월동준비는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곰 살 맞은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관계 안에서 은근하고 은밀한 뜨거운 양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양기는 난로가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다.
기운의 교류를 통한 활발한 운동성이다.
이 겨울을 버텨내고 내년에도 살아남기 위해,
옆에 있는 사람들을 귀중하게 모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