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서두름으로
어지간히 잎 올리고 꽃 피우고 싶었던게지
한파가 오락가락 시소를 타는 이즈음
연한 초록빛 어린 잎이 수줍은 듯 해를 향해 피었다
지난 늦가을
법흥사 마당변에 부푼 씨낭을 매단 채
안타까운 숨을 고르고 있던 봉선화 몇 그루
하 ~~~
애처러워 손을 대자마자 마지막 한숨을 터트리며
갈색 씨앗을 유산으로 남겼다.
손수건에 올려 둘둘 말아 집에 가지고 온 뒤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 빈 화분에 뿌려 두고 잊었는데
철모르고 피어난 봉선화
봄이면 일일이 번호를 부르지 않아도 순서에 맞춰
제 각기 색깔과 모양과 향기를 갖추고 일어서는데
한겨울에 피어난 여름 꽃의 혼란이 신기하고 어리석다
저 여린 잎의 분별없음이 혹여 나와 같지 않을까
서툰 서두름으로 제 본분을 잃어버리고
속절없이 시들어버리는 일은 없었을까
내 가벼운 말과 몸짓으로 타인의 장점을 가리는 일은 없었을까
순서를 잊은 채 일찍 일어난 꽃에게 말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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