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몸과 앎의 사이

燕巖 2015. 8. 18. 10:19

 

몸과 앎의 사이

 

나이는 다만 부호일 뿐이다.

 

나는 내가좋다.

 

새로울 것은 없다

평소 나는 나 자신과 사이좋게 아주 잘 지낸다. 나는 내가 아주 좋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참! 좋다. 남들이 칭찬해 주면 좋지만 칭찬해 주지 않아도 나는 나정도 인간이면 참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퍽의 달인이다. 허나! 이 괜찮은 나를 들여다보고 글로 쓰려하니 갑자기 서먹해 지며 주저하는바가 크다.

 

사주 명리학을 만나면서 나의 사주팔자에는 관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십만 명을 휘졌고 다녔던 내가 무관 사주팔자라니.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차츰 그 원리에 감탄하고 사주 명리학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보면 더욱 기특하다.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며칠을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던 중 어제는 갑자기 귀에서 굉음이 계속 들렸다. 요사이 평소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가? 고개를 가로 저어도 보고 침을 꿀꺽 삼켜 보아도 여전히 그 굉음이 들렸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럽다. 24주 동안 외우는 과제들이 중국시장에서 무역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 싶었는데 탈이 난건가? 두드리던 자판기에 손을 멈추고 안정을 취하려고 얼른 밖으로 나가보니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다. 예민해 졌구나. 참 잘 안다고 했던 내 몸이 세탁기 소리도 구분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라니. 안다고 자만했던 나를 내려 놓아야했다. 그래 여기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시작하자.

 

신이나 진리, 실재 또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러한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은 결코 책이나 성직자, 철학자 또는 구세주들로부터 그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자기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으며, 바로 이점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미숙함은 자신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는데서 나오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18p물병자리)

 

 

내가 바라보는 것들

 

 戊土 일간에 년주가 임수에 진토이니 진토속의 지장간은 복잡하구나. 그뿐만이 아니라 비겁이 넷 나와 같은 에너지장이 4개다. 그래서인가 사람들 속에 늘 있다. 있어도 이만 저만의 사람이 아니라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사람들 속에서 뒹굴고 있다. 그래도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이 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좋다.

 

관성의 무 존재, 렴과 나를 극하는 기운의 부재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착이 아주 강하여 편착을 달리다 보면 재물 관리에 소홀해지고 자신을 절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 곳에서나 노력한 것 보다 돌아오는 결과는 적었다. 운동선수로 활동을 할 때도 늘 관중 속이다. 유통업을 할 때도 늘 고객과 함께였다. 국제 봉사단체에서의 활동 또한 인간 중심이었다. 늘 배려와 나눔의 습관이 몸에 배여 참 괜찮은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무관성의 역할(?)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애착이 집착에 가까웠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무의식 습으로 자퍽 팔자의 마일리지가 엔간히 쌓였다. 때론 가정도 까마득히 잊고 소속 공동체에만 집중하였다. 세상은 넓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는 혁명이 대체 누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한꺼번에 다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구할 수 있을 뿐이다.(고미숙, 나의 운명사용 설명서)

 

 

내 몸의 주인은 나다

 

어쨌든 나를 들여다보고, 작은 마음의 소리로 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은 버겁다. 수 십 만 명을 휘졌고 다녔던 배짱은 간곳없이 외우고, 읽고, 필사하고, 단어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팍 팍 기가 죽어 버린다. 참 희한하다. 또한 과정을 이해하고 소화해 내기가 태부족인데도 거기에다 그걸 글로 써야 한다니나만 그런 건가? 인문학 공부는 이런 것이다, 멋모르고 손가락 하나 여기요~~ 여기요~~ 하면서 살며시 들고 있는데 열에 죽는지 홍진에 죽는지도 모르고 과로사할 지경이다그나마 6개월 전의 프로그램으로 되돌아가지나 않을 런지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도반님들의 응원과 인연 때문이라도 버텨야한다. 나 자신의 에너지 장이 다시 변하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 하게 될 일이다. 무슨 말인지 알제? 안다~~~~그래서 힘들다.

2012년에 대운이 바뀌었다. 그래서 인가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인 탓인가 몇 년 동안 힘들었던 부동산 문제가 2012년 일 년 동안 아주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대운을 맞이하는 마디를 넘기는 새로운 에너지 장일 것이다. 오히려 후폭풍이 없으니까 적당히 긴장되었던 그 때의 삶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오후4시 강의시간에 도착하려면 새벽부터 대구 집에서 분주해야 겨우 12시에나 출발하게 된다. 온 가족들의 응원이 대단하다. 특히 강남에 사는 큰 사위와 딸아이가 더욱 그렇다. 실시간으로 메시지다. 폼 생 폼 사 권위의 대마왕인 내가 공부를 한다니, 그것도 경남 양산까지,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가 이상하고 신기한가보다. 그래도 아버지답게 느지막에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간다고 말해 준다.

 

이제 자신에 관해 아는 것을 모두 잊으라. 자신에 관해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잊으라. 우리는 모르는 것처럼 출발하려고 한다. 어젯밤에는 비가 몹시 내렸고, 지금은 개이기 시작한다. 새롭고 신선한 날이다. 이 새로운 날이 마치 단 하루밖에 없는 것처럼 만나자. 어제의 기억은 모두 뒤에 남겨놓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자. (지두 크리슈나르티,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30p)

 

 

 

나를 살리는 공동체

 

다시 칭찬 모드,

내 인생에서 참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은 3가지 얘기 한다면 그중 하나는 아버지 되기 참 잘했다. 난 꽤 괜찮은 아버지다. 두 번째는 국제 봉사단체 회원으로 활동 한지가 20여년 되었는데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까 자존감을 느끼게 되고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아름다워졌다. 그중에 또 하나 정말 잘했다는 것이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장식할 대한 역술인 협회를 알게 된 것이다. 나를 칭찬하는 것이 중증환자일까? 환자의 글도 글이다.

 

나는 요즘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양산 본원에서 공부하는 덕분만으로 생겼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부터 뭔가 꿈틀대던 대운의 기운들이 차츰 모이면서, 나를 중심으로 나를 둘러싼 관계 장들에서 변화의 싹들이 움터 나오기 시작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 이런 거구나, 공부라는 게. 결코 거창한 게 아니었구나. 힘 빼고 하는 거였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여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자신을 탐구해 본 적이 없다. (중략)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의미를 지닌다. -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니체 도덕의 계보서문337p>

 

 

 

그대로를 보자

 

지성의 주름이 있긴 하다는 건가, 외계인들만이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용어들을 수십 번씩 반복하니 그래도 입력되는 걸 보니 아직은 그래도 괜찮다는 건가? 바로 지금을 봐야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너무 좋다. 있는 그대로 두고 볼 일이다. 푸코는 외부로의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온전히 나에게로 향하는 자기 배려를 말한다.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정규직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비정규직으로 길들여진 탓인가, 언어의 폭력이 난무한 양산 본원의 과정이 버겁다(이해력이 떨어지니까 욕으로 들린다). 재수강에 발걸음을 선뜻 내 딛기가 약속이 흔들린다.

 

 

 

그래도 게기라니까~~~

 

얼쑤~~~나를 담고, 나의 존재를 알고, 나는 할 거다. 끝까지 바티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나를 들여다보고 히죽이 웃을 일이 있을 것이다. 짐 된다고 밀어내도 게길거다. 눈치로도 잡다보면 로토 당첨될 날도 있을 것이다. 나의 무토는 게기기의 달인이다

 

길이란 어려운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게 아니라 바로 이'사이'에 있는 것이지?(박지원 열하일기52p)

 

 

 

가장 강함을 추구하였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강함의 끝은 부드러움이었고, 그 부드러움은 사랑이었다.

이제 나이를 버리고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다.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모든 이들이 변화무쌍한 사주명리를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명을 운전하는 삶의 기예를 터득하게 되기를 기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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