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근대교육에서 좋은 스승이란 친절하고 자상한 안내자를 뜻한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계몽의 구조이기도 하다.
제자는 어린애요, 길 잃은 양이다.
선생은 어른이고, 목자다.
어둠에서 빛으로,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다.
고전에서는 이와 다르다.
스승과 제자는 모두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동료일 뿐이다.
부처님 또한 자신을 스승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신이나 절대자라는 호칭은 더더욱 가당치가 않다.
다만 다른 이들보다 앞서 진리와 자유로 가는 길을 열었을 뿐이다.
일찍이 양명좌파의 기수 이탁오가 설파했던,
스승이면서 벗이고,
벗이면서 스승인 사우의 관계가 바로 이런 것일 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절대 친절하지 않다.
아니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자비를 터득하기 위해선 무자비의 터널을 거쳐야 한다는 역설을 믿기 때문이다.
고로, 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친절은 금물이다.
그래서 아무나 다,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문턱을 넘어 오는 만큼만 가르쳐 준다.
그릇과 국량이 감당하는 만큼만 알려준다.
자신을 구원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평준화와 균질화를 강조하는 근대교육과는 완전히 배리된다.
평균화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진리가 아닌 지식(혹은 정보)으로,
체득이 아닌 축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신체적 차이나 방향성은 지워지고 모두에게 같은 목표와 기준이 부여된다.
우리 시대 청년들을 압박하는 성적과 학벌, 스팩등이 그것이다.
이런 지표들이 얼마나 진리와 자유,
깨달음과 지혜라는 영역을 잠삭해 버렸는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길위의 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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