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燕巖 2016. 1. 14. 23:25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박성환

 

 

지난봄처럼 물뿌리개를 든 채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반짝거리며 뽀얗게 움이 틀 것만 같아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정성들여 가꾸던 열매 다 키워내고 나면

시들지 않는 게 뭐가 있겠냐만은

푸르던 그날 다 잊고서 말라버린

이파리 하나, 둘 떨구는

꼬마나무 곁에 나는 서 있었다.

 

빨갛게 열매는 영글었는데

빨갛게 이파리 타들어 가는

꼬마나무 곁에서 마뜩한 가슴으로

나는 서 있었다.